경제공부 / / 2022. 11. 8. 08:57

경제 공부하기(미국 독립혁명, 프랑스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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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인간

 

기업은 법인(法人)이다. 법에 의해 계약을 맺고, 돈을 빌리고, 노동자를 고용하고, 법원에 출두하고 자산을 가질 수 있고, 세금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에 기업은 각자 모습이 달랐지만 서로를 닮아갔다. 소유자나 주주가 돈을 지불하고 회사 주식의 일정 지분을 가져간다. (회사를 조각내어 나눠 갖는다.) 기업은 주식을 팔아 번 돈으로 사업을 한다. 이렇게 생긴 수익은 사업에 재투자하거나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나눠준다.

 

만일 기업이 사업에 실패하면, 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돈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투자한 돈 이상을 잃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것을 '유한책임'이라고 한다. (주주는 기업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경영자를 뽑아서 운영하고 감독한다.)

 

큰 사업을 시작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모든 기업이 큰 사업을 하지는 않지만, 큰 사업은 대개 기업이 운영하는데, 규모를 계속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회사의 주식을 소유했다고 직접 지시를 할 수 없고,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주주는 이런 상황을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주주는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비효율적인데, 경영자가 자기 사업처럼 다른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횡령, 배임 등 문제를 일으킨다.

 

스미스의 시대에 정부는 기업의 존속을 위해 자유시장에 개입했다. (예 : 동인도회사) 그래서 스미스는 기업이 자유시장의 이익 실현에 도리어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정부의 개입은 기업에 그치지 않았다. 상인들에게도 미국 식민지와 독점적으로 무역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영국의 상인들은 엄청난 이윤을 남겼지만, 영국과 미국의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가격과 세금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독립혁명'이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 미국 독립혁명

 

영국의 조세정책에 식민지의 미국인들이 분노했다. 영국의 독과점도 미국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동인도회사도 미국인들을 언짢게 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직접 중국에 가서 차(Tea)를 사 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 동인도회사가 파산 위기에 몰리자, 영국 정부는 조세감면을 통해 회사를 살리려 했다. 하지만 식민지인들은 여전히 차(Tea)에 세금을 내야 했다. 화가 난 미국인들은 동인도회사의 차를 바다로 던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보스턴 차 사건,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으로 미국에 독립혁명(1775~1783년)이 일어났다. 이때 마침 영국과 자주 싸움을 벌이던 프랑스가 미국 편을 들었다.

 

 

최악의 시대가 가고 최고의 시대가 오다 : 프랑스혁명

 

영국이 패할 무렵 프랑스는 전쟁 비용 때문에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구제도의 모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거기에 흉작까지 겹쳤다. 프랑스 경제학자들은 이 위기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급격한 정책 변화를 시행하기 위해 루이 16세는 삼부회(三部會)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대표들이 속속 등장하여 급진적인 사상에 불을 붙였다. 삼부회는 국민의회로 이름을 바꾸고 모든 것을 뜯어고칠 준비를 마쳤다. 불합리한 법, 미신, 무역장벽을 허물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대로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리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하며 농민 반란이 확산되었다. 전 국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일어난 전형적인 시민혁명이다.

 

하지만 사람은 급작스럽게 합리적이 될 수 없다. 납세자들은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고, 물가는 치솟았고, 국민의회는 좌우 파벌을 만들어 싸웠다. (좌익 : 급진주의자,  우익 : 상대적 보수주의자)

 

좌익은 정적(政敵)을 없애기 위해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혼란, 침략, 나폴레옹의 군사독재, 그리고 20년 넘도록 전쟁이 이어졌다. 프랑스혁명의 드높은 희망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났다. 유럽의 작가들은 발전이 가져온 공포를 글로 써댔다. (프랑켄슈타인, 1818년 발간) 소설가들뿐만 아니라 그 시대, 아니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염세주의자는 영국의 학자 '토머스 맬서스'일 것이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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