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부 / / 2022. 11. 12. 09:26

경제 공부하기(마르크스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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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경제학자

 

1867년 '카를 마르크스'는 무시무시한 「자본론」을 발간했다. 그는 혁명의 도래를 경제적 개념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모든 경제학자의 책을 읽었고, 아무런 강흠도 받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읽고 질문했다. 모든 제품이 노동 비용에 팔린다면, 이윤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건가? 마르크스의 답은 '노동 그 자체'다.

 

자본가는 노종자가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비용으로 고용한다. 그런데 낮은 길고 노동자는 튼튼하다. 노동자는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만들어 낸다. 이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살펴보자. 기계가 좋아질수록 공장에 필요한 노동자 수는 줄어든다. 하지만 이윤은 노동자를 쥐어짜야 생긴다. 쥐어짤 노동자가 줄어들면 이윤도 줄어든다. 결국 세상은 실업자 무리와 이윤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자본가 몇 명만 남게 된다.

 

「자본론」은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새로 썼다. 마르크스를 지지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태평양 바다를 채울 만큼의 잉크가 소모되었다고 한다. 마르크스의 논리는 리카도 모형에도 적용되었지만, 현실 세계는 모형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자본론」은 현실 세계를 직시했다. 예를 들면, '노동'은 사람이지, 또 다른 상품이 아니다. 다음에서 마르크스의 통찰에 대해 살펴보자.

 

  1. 대량생산에는 대량 조직이 필요하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시장 정도로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운영해야 하는데, 그건 당연히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 여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경제가 사회화될 것이다.
  2. 자본가들은 집단으로서 더 이상 누군가를 고용할 수 없다면 이윤을 낼 수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깨닫는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가능한 급여를 적게 주려하지만, 동시에 돈을 가진 소비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소비자가 대부분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소비하는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
  3. 산업시대의 자본주의는 스미스의 시장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자본론」은 난해한 논리와 문장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쉬는 시간 짬짬이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영국 노동자들은 조직을 결성하고 있었다.

 

 

노동조합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은 개개인이 나서는 대신 조직적으로 협상에 대응했다. 자본가와 임금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고, 이러한 단체교섭이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회복시켰다. 19세기 후반에 노동조합은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850년 마침 영국 정부는 공장 작업환경을 사적인 문제도 놔두지 않고 개입했다. 주 노동시간을 60시간 이하로 제한하는 '공장법'이 제정되었다. 또한 조합 운동은 은행, 탄광 등 여타 사업체를 집단적으로 운영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조합 운동은 성공했을까? 어떤 사람들은 집산주의 사회로 도약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큰 집단보다 작은 집단에 속해 있을 때, 월씬 협력을 잘하는 법이다.

 

「자본론」이 출간될 무렵,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엥겔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 점차 부르주아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엥겔스는 자신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까지 개혁을 장애로 여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혁주의자(사회주의자)들은 엥겔스를 향해 당신만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혁명주의자(공산주의자)인 엥겔스는 자본주의를 대체해야지 개선하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혁명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공산주의는 왜 필요한 것인가의 물음에, 마르크스는 귀를 닫고 여전히 사람들이 혁명을 완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 '블라디미르 레닌'은 한발 더 나아간다. 공산주의자들이 직접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력을 잡은 이후에 인민들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이니 믿어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 경찰국은 혁명가들 뿐만 아니라 개혁가들도 참을 수 없었다. 

 

1871년 독일을 통일한 '철의 재상', '오토 본 비스마르크'는 러시아와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민주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사회주의자를 탄압했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사상 일부를 받아들이는 길을 선택했다. 독일의 산업 노동자들은 노령연금, 상해보험, 의료보험을 제공받았다. 

 

거대 자본가들도 누구를 따라야 할지 알았다. 경제의 주요 산업은 국가가 통제하고, 다른 분야는 내버려 둠으로써, 비스마르크는 오늘날의 '혼합경제'를 만들었다. 독일의 혼합경제는 효과를 발휘해 금방 영국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혼합경제는 오늘날 더 잘 작동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혼합경제를 실시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순수 자본주의가 아니라 혼합경제 제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현대에도 많은 것들이 통제되고 있다. '자유시장' 상품도 정부의 품질기준을 따라야 한다. 이 상품들은 공공으로 운영되는 도로, 다리, 터널을 통해 운반된다. 전기는 정부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공기업이 제공한다. 물은 공공서비스이다. 경찰과 소방관은 정부에서 급여를 받는다. 위생과 하수도 및 안전을 시장에 맡기면, 시내는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다만,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아도 나머지 시장은 알아서 돌아간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당연시하지만, 이중 많은 것이 사회주의 실험으로 시작되었다. 현대사회에서는 공공으로 통제할지 말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어느 부문을 어떻게 통제할지, 그리고 어떤 목적인지를 묻고 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주 하지 않는데, 아마 자유시장이라는 개념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9세기 후반에 독일이 사회주의 실험을 하고 영국이 그 흐름에 살짝 발을 담갔을 때에도, 많은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기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었다.

 

 

 

마르크스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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