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부 / / 2022. 12. 16. 21:58

경제 공부하기(위대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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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적인 전쟁 경제"

 

1947년 국방국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50배 위력(3메가톤)을 가진 폭탄을 만들어서 때가 오면 소련을 공격하겠다고 발표했다. 1960년 미국은 히로시마 폭탄의 100만 배 위력을 가진 폭탄을 만들었다. 해마다 미군은 산업이 공급할 수 있는 만큼의 화력이 필요했다.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화력을 쌓아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정부는 공급업체에게 원가에 더해 수익을 보장하는 원가 가산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기업이 군사지출에 의존했다. 기술 역시 군사지출에 의존했다. 군에서 연구한 로켓, 비행기, 전자장치 기술이 다른 부문의 경제로 넘어왔다. 1962년에 미국은 텔레비전보다 미사일 전자장치 연구에 3배나 많은 돈을 썼다. 캔 스프레이도 군대에서 넘어온 것이다. 앞에서 군비 경쟁이 어떻게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는지 확인했다. 그런 일이 두 번 이상 일어날 뻔했다. 하지만 그 여파를 상상하니 그런 생각은 꿈에라도 하지 않는 게 나았다. 다른 한편으로, 군사지출은 이윤과 일자리를 뜻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반대 시위가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시위가 있어도 그 소식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후의 언론

 

규모의 경제(초기 비용이 상승하면 단위당 비용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철강만이 아니라 신문 업계에도 통용되었다. 1950년대에 한 도시에 하나의 거대 신문만 독자들에게 제공되었다. 전쟁 전에는 다양한 뉴스 매체가 존재했으나, 전쟁 후에는 특정 언론기관의 신문만 가판대에 놓였다. 거대 신문은 당연히 거대 기업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대 기업으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교가 불가능한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했다. 바로 TV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텔레비전은 들불처럼 확산되었다. 때문에 1958년 당시 엘리너 루스벨트(전 미국 대통령 영부인)는 하루에 몇 시간씩 텔레비전에 빠져 산다면, 사람으로서의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유권 집중의 문제도 나타났다. 1940년대부터 수십 년 동안 미국 전역을 관장한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단 3개였다. 텔레비전 방송을 엄밀히 말하면 시청자가 돈을 내지 않으므로 그들을 위한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광고주를 위해 시청자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광고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사업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다. 그래서 TV, 라디오, 잡지,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는 자체 검열을 한다. 1947년 '윌리엄 셔러'는 광고주가 싫어할 수도 있다는 CBS의 우려 때문에 해고된 전설의 언론인이다. 그래서 뉴스, 정보, 그리고 여론은 일방적인 흐름이 되었다. 정부-기업-군대의 정보는 언론사에서 자체적으로 불쾌한 부분을 걸러내어 시청자에게 편향된 정보를 전달했다. 사람들의 동의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이 너무 화가 나서 TV에 소리를 질렀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당신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소리쳤다고 하더라도 언론사나 이익집단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러한 일방향 전달이 전후의 정치적 무관심 확산을 설명할 수도 있다. 심각한 정치 문제도 TV를 통해 보면 좋게 비쳤다.

 

 

새로운 도전과 위대한 사회 :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

 

1961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집무실을 떠나며 경고를 남겼다. 그는 거대한 군사기구와 군수 관련 대기업이 결합해 미국의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부적절한 권력이 재난을 몰고 올 잠재성은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는 권력들의 결탁에 이름을 붙였는데 '군산(軍産) 복합체'라고 했다. 새로운 민주당 대통령 존 F. 케네디(1917~1963년)가 정부에 비전과 활력을 되살렸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달에 인간을 보냈으며, 인권을 바로잡았다. 케네디 행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제야 정부는 미국에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인정했다. 케네디는 1963년에 암살되었다. 케네디의 정책은 후임 대통령 린든 존슨(1908~1973년)이 승계했다. 린든 존슨은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다. 그는 '위대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려 했다. 메디 케어(노인 의료보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가난과의 전쟁, 성장의 여파로 인한 공해와 난개발 해결, 헤드스타드(유아교육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 '위대한 사회' 정책은 돈이 많이 들었지만, 마침 돈이 있었다. 케네디가 조세삭감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킨 덕분이었다. 케인스학파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기계처럼 조종해 낮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고용률을 유지했다. 1965년 타임지는 죽은 지 20년이 지난 케인스를 표지에 실었다. "국가의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케이스의 원리를 따라서 전쟁 전 경기순환의 요동을 피했을 뿐만이 아니라 아찔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놀랍도록 안정적인 물가를 달성할 수 있었다." (타임, 1965.12.31) 하지만 1965년이 미국 경제가 계획대로 움직인 마지막 해였다. 그 이유를 알려면 그 사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따라가 보아야 한다. 

 

 

위대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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