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13년 초고소득자에게 소득세를 7%까지 올리고, 연방준비제도가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을 공식적으로 설립했다. 은행들을 규제하고 화폐량을 조절하기 위한 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비공식적으로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J.P. 모건으로부터 중앙은행으로써의 역할을 빼앗아오기 위해서였다. 모건은 1913년에 사망했고, 전 직원에게 1년 치 월급을 보너스로 남겼다. 수십억 달러를 관리하던 그가 남긴 유산은 총 6,800만 달러였다. 앤드루 카네기는 모건 스스로가 자신이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산업혁명과 글로벌 경제
1914년이 되면 산업혁명으로 인해 서구 세계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비행기, 선박, 기차, 자동차 등의 운송수단이 발달했고, 그 외의 무기, 산업 역량 등 기술적 발달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서구 제국들은 자원과 시장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지구 반대편으로 진출했다. 일본은 서양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일본에는 훔쳐갈 만한 천연자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일본은 원자재를 수입하여 완제품을 수출함으로써 '산업화'를 이루었고, 자신들의 제국을 만들어갔다.
대영제국은 세계를 지배했다. 북아메리카와 러시아 평원은 영국의 옥수수 밭이고, 시카고와 오데사는 곡물창고, 캐나다와 발틱해는 벌목장이며, 호주는 영국의 양을 기르고, 아르헨티나와 북아메리카 서부 지역 대초원은 영국의 소떼가 뛰어노는 목장이다. 페루는 은을 보내고 남아공과 호주의 금은 런던으로 흘러들고,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은 영국을 위해 차를 재배하고, 인도 전역에 영국의 커피와 설탕, 향신료 농장이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영국의 포도밭이고, 지중해는 과수원이며.... 등과 같은 생각이 일반적일 정도로, 영국은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를 지배했다.
영국이 지배하는 세계는 당신이 영국 사람이라면 싫지 않겠지만, 독일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독일의 혼합경제가 자유방임에 가까운 영국의 경제를 이미 추월하고 있었는데, 독일인들은 영국이 왜 아직도 최고라고 우기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이러한 대치 상황으로, 유럽 각 국가들은 무기를 비축하기 시작했고, 긴장감은 더 고조되었다. 모든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무기를 하는 군비 경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설마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상호의존적인 세계 경제가 모두 무너질 것이고, 이는 모두에게 해로울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전쟁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말이다. 이런 예측들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존재라면 그럴 수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전시경제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8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모든 나라들이 갈라게 되었다. 연합국(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후에 이탈리아) vs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후에 튀르키예)이 대치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대량으로 생산된 근대식 무기들은 전쟁터만 위협하지 않았다.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했다. 적의 참호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참호에서 나와애 했지만, 군인들은 자살행위와 같은 짓을 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지하 참호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참호와 멀리 떨어진 안락한 시골 영지에서 장군들은 끊임없이 진격 명령을 내렸고, 수백만 명의 시체가 전쟁터에 쌓였다. 전쟁은 교착국면에 들어섰고, 제1차 세계대전의 승패는 엉뚱한 곳에서 결정되었다.
산업 전쟁은 사람들만 집어삼키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전례 없이 많은 총알, 포탄, 식량, 총, 옷, 석탄, 석유, 가솔린, 트럭, 탱크, 비행기가 소요되었다. 양측 모두 자국민이 생산한 물자의 마지막 하나까지 동원했다. 말 그대로 전쟁을 위한 경제였다. 전쟁 경제는 명령 경제이다. 정부가 자원을 할당하고, 무엇을 만들지 지시하고, 생활필수품을 배급한다.(명령-할당-지시-배급) 전쟁 경제는 민간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게 만들기 위해서 동기를 유발해야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정부는 '검열, 선전, 탄압'이라는 방법을 터득했다. 명랑할 것, 비밀누설 금지, 질문 금지,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음. 적국의 경제에 직접 타격을 주는 방법도 사용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으로 '전략적 폭격'이 실시되었다. 말이 전략적 폭격이지, 실제로는 무고한 시민에게 무자비하게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었다. 적국의 경제를 파괴하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인 '봉쇄' 전략도 사용되었다. 독일 잠수함이 연합국의 무역선을 괴롭히자, 연합 해군은 동맹국을 완전히 둘러쌌다.
미국은 중립적 입장이었지만, 동맹국과 무역이 저지되자 연합국 하고만 거래했다. 전쟁 물자는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는 고객이었다. 연합국은 미국의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연합국에 빌려준 돈이 많았기 때문에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연합국이 전쟁에 승리해야만 했다. 그래서 연합국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게 되었다.(특히 전쟁으로 인해 돈을 벌게 된 초우량 기업들) 당시 월슨 대통령은 연합국을 편들만한 명분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였으나, 1917년 러시아는 차르를 쫓아냈으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들로 인해 여전히 전쟁에 참여했다. 이제 연합국은 '민주주의'로 똘똘 뭉쳤지만 동맹국은 그러지 못했다. 월슨 대통령은 이것을 명분으로 삼아 연합국을 지원했다. 전 세계는 민주주의를 안전하게 존속시켜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연합국 편을 들어 돈만 많이 벌어들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러시아에서 민주주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1917년 권력을 잡은 레닌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발을 뺐다. 배고파서 지친 동맹국은 1918년 말에 항복을 선언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가 파탄에 빠졌는데, '베르사유 협약(1919)'의 징벌 조항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독일인들이 전쟁의 모든 비용을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의 젊은 경제학자 케인스는 '평화의 경제적 귀결'에서 독일이 상품을 수출하면 돈을 갚을 수 있는데 연합국이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국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노력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독일이 배상할 수 있도록 각종 계획들은 내놓았다. 한 계획에 따르면 독일은 1988년까지 배상해야 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미국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에 독일의 채무를 탕감해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독일은 추가로 돈을 찍어내서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 돈들이 인플레이션(화폐가치 하락, 물가상승)을 일으켰다. 독일 돈은 완전히 신뢰를 잃었고 신뢰가 없다면 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돈=신뢰) 현금은 저축할 가치도 없고, 훔칠 가치도 없었다. 1923년 독일은 결국 기존의 화폐를 버리고 새 화폐를 발행하면서 이 상황을 멈출 수 있었다. 돈이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통화량을 철저히 조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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